본문 바로가기

내 멋대로 읽는 논어

내 갈길 간다


"너 어떡하려 그러니"

"그게 맞는 거니?"


한 때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듣던 말 아닐까? 요즘은 좀 덜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이를 먹어 더 이상 그런 말을 안 듣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하지만 단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좋지 못한 눈초리로 청년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여전할 테다. 본인도 느끼고 있고.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길만이 정답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행여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망설임에 이미 만들어진 길을 혹은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과연 그것은 심적으로도 그리고 주변의 눈길로 부터로도 가장 안정감 드는 행동일 테다.


그러면, 그렇게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내 인생은 채워지는 걸까? 남들과 똑같은 직장에 똑같은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내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가 만약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드는 천한일이라도 나는 하겠다. 그러나 추구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논어, 김형찬, 홍익출판사, 89p

논어
국내도서
저자 : 공자(Confucius) / 김형찬역
출판 : 홍익출판사 2016.02.15

상세보


공자도 정당한 부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공자 본인의 인생에 대한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 듯하다.


사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도 경제와 직결된다고 본다. 직장도 안전, 월급도 안전 게다가 가정도 안전...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돈 없이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듯이 돈이 안정감을 주는 건 아니지만 돈 없이는 안정감 있는 인생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삶에 안정을 추구했을까? 아마도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어온 시대상 때문일 테다. 전쟁이나 외환위기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이 변했고 부를 창출하는 기준도 바뀌고 있다는 걸.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 돈 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걷지 못할까?

우리는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미 누군가 풀어놓은 문제를 다시 풀어볼 뿐. 같은 문제라도 다른 답이 있는 것을 알고, 이제는 스스로가 문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다른 답을 찾는지 그리고 어떻게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지 누군가 설명해 준 적이 없다.


위정자가 자신의 덕을 갈고닦으며 정치하면 천하는 자연히 그 아래에 복종한다. 마치 하늘의 중심축을 이루는 북극성이 항상 일정한 자리에 있는 덕분에 주변의 수많은 별이 그 북극성을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다.
초역 논어, 미사키 류이치로 지음/이소담 옮김, 스카이 출판사, 39p

초역 논어
국내도서
저자 : 미사키 류이치로 / 이소담역
출판 : 스카이출판사 2013.10.20
상세보기


위 글귀는 인생의 방향이라기 보단 정치 이념을 말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덕을 갈고닦으며 정치하면 천하는 자연히 그 아래에 복종한다.'라는 말을 이용해 이번 주제를 풀어보고자 빌려왔는데, 우선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정치가 어려운 것은 딱히 기준이 없는 곳에서 명분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큰 범주에서는 국가의 정치를 예로 들겠는데, 정책 활동을 시작하기 전엔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내 세우는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만한 명분을 만드는 것이 정치활동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엔 범위를 줄여 본인이 활동하는 운동 친목회 수준으로 고려해 보겠다. 비영리 단체인 친목회에서도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데, 야유회를 가야 하는데 날짜와 장소에 대한 의견이 수렴하지 않는다던지, 단체복을 맞춰야 하는데 구성원들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아지지 않는다던지 하는 정말 소소하다면 소소한 문제들이다. 이런 작은 일들에도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은 선택을 위한 명분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제 범위를 최소화하여 개인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누군가 이미 풀어놓은 정답이 있는 문제는 그 정답이 진리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도 정답일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배워오기도 했고. 하지만 더 이상 기존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느끼고 있지 않은가? 아프리카 방송이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즐기고 싶은 일들을 즐기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자주 시키던 발표는 지긋지긋했지만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껴 그것이 직업이 된 사람. 퇴근 후 취미로 프라모델에 색을 칠하던 사람이 영상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되자 전문 피규어 제작자가 된 사연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다.


스스로에게 명분을 세운다고?

만약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스스로 정한 인생이라면 그것 또한 충분한 명분이 될 테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명분을 세운 다는 건 보통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신 나간 행동 같기도 하고. 그런데 공자가 말한 군자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라는 것처럼(꼭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고민을 지나치게 하는 것보단 일단 정한 후 몸이 움직여 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충분히 설득시킬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남들 즐겁게 인생 사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는 아닌 걸까?

다시 돌아가 이야기해 보면. 우리는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 것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 걸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는 인생을 매 순간의 시도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작게는 오늘 처음 보는 가게에 들어가 어떤 음식을 먹을까부터, 크게는 지금껏 모아둔 돈으로 당장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지 선택하는 것 까지.(범위를 최소화 한 개인의 문제라는 건 이와 같이 작은 부분부터 인생을 시도함을 뜻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명분이 확립되더라도 주변으로 부터의 압박(특히 부모님이겠지만)을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뜻하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공자가 말한 바를 오인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빗대어서도 안되고, 우리는 지금의 시대에 맞는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걸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내 갈길 간다라는 말이 생각할수록 어렵다.

이젠 예전처럼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말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내 갈길 간다라는 말이 생각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충분한 명분을 세울 수 있을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굶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더 자세히 알아보고, 더 경험해보면서 내 갈길 포장이 잘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내 갈길 가야겠다.

남들이 가는 길 따라가는 것, 이미 만들어진 길로 들어서는 것.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삶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금 행하고 있는 것들이 공허함을 완벽히 채워주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만족감을 던져주고 있으니 역시 내 갈길 가야겠다.




브런치

'내 멋대로 읽는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과 지혜; 현대적 의미  (0) 2017.09.18